노인취업센터 4년째 광고모델 교육 265명 수료
TV·홈쇼핑·포스터 모델·보조 연기자 등 활동
서초복지관에선 S엔터테이먼트 60여명 맹활약
텔레비전 속 실버모델이 인기다. 화면이 잘 나오지 않는 구형 텔레비전을 두드리며 “아들아 우린 아무것도 필요없다~”라고 능청스럽게 말하는 노부부. 냉장고에서 휴대폰을 꺼내 건망증이 심한 아내를 배려해 슬그머니 식탁 위에 놓는 음료 광고 등 할머니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광고가 인기를 끌면서 실버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어르신들이 등장하는 광고 수요가 늘면서 노인관련 기관이 실버모델을 선발해 교육은 물론 광고업체와 연계해 취업을 알선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노인취업훈련센터, 광고모델훈련 실시
서울노인복지센터 부설 노인취업훈련센터(02-6911-9583)는 지난 2005년부터 광고모델에 필요한 훈련을 통해 모델 업무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취업을 돕기 위해 만5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광고모델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매년 1~2차례 실시되는 훈련은 연기전문강사나 모델업체 대표 등 모델관련 전문가를 강사로 초빙해 광고모델시장의 이해를 비롯해 보조연기자의 개념과 역할, 대사처리와 프로필작성, 연기기초와 실습 등을 교육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3월과 7월 2차례 훈련을 실시, 지금까지 265명의 어르신들이 수료했다. 광고모델로 활동하는 어르신들은 텔레비전 광고모델을 비롯해 홈쇼핑·포스터 모델, 보조연기자 등으로 활동하게 된다.
어르신들이 노인취업훈련센터가 마련한 광고모델훈련을 받고 있다.
최근 어르신들 관련 보험이나 용품 등 시장수요가 늘면서 어르신들의 구직활동도 늘고 있는 추세다.
교육을 수료한 어르신들은 각 고령자취업알선센터와 연계해 엔터테이먼트나 에이전시의 요청에 따라 취업으로도 연결하고 있다. 현재 30여명 이상이 실버모델로 활동하고 있고, 엔터테이먼트와 계약을 체결한 어르신도 3명이나 된다.
최근엔 광고모델 훈련을 받은 어르신 가운데 5명이 기초노령연금 홍보 관련 모델 오디션에 합격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최금철(67)씨는 노인취업훈련센터에서 광고모델훈련을 받은 뒤 농협 광고모델로 활약해 일약 스타로 발돋움한 케이스다.
3년 전 광고모델 훈련을 받은 최씨는 지난해 한 에이전시로부터 광고를 찍자는 제의를 받았다. 에이전시가 고령자취업알선센터를 통해 최씨의 프로필을 보고 마음에 든 것.
최씨는 오디션을 거쳐 해남을 배경으로 2박3일 동안 광고 촬영에 들어갔다. 최씨가 맡은 역은 농사를 지어 자식을 잘 키운 아버지의 흐뭇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 단독촬영만 2시간. 첫 경험이라 실수도 많았지만 힘든 줄 몰랐다.
새로운 경험에 즐거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최씨는 얼마 있지 않아 텔레비전과 잡지, 신문에서 자신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최씨는 훈련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최씨는 “센터에서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이런 여유로운 웃음을 연출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모델 교육이 실전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노인취업훈련센터 윤효정 사회복지사는 “실버산업이 각광을 받으면서 어르신 모델을 필요로 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며 “이에 발맞춰 어르신 또한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노인종합복지관, S엔터테이먼트 운영
어르신들의 모델이 각광을 받으면서 일자리사업의 일환으로 실버모델사업에 하는 곳도 있다. 서초노인종합복지관이 운영하는 S(에스)엔터테이먼트(02-577-6388)다. S엔터테이먼트의 ‘S’는 실버(Silver) 서초(Seocho) 센세이션(Sensation·세상을 놀라게 함)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S엔터테이먼트는, 지난해 8월 서초노인종합복지관이 모델을 희망하는 어르신들의 욕구충족은 물론 소득창출을 위한 노인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S엔터테이먼트는 실버모델이 갖춰야할 교육은 물론 에이전시와 계약을 체결, 알선하는 역할을 한다. 실버모델은 텔레비전 광고모델을 비롯해 포스터 모델, 보조출연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게 된다.
모델로 활동하는 어르신들의 출연료는 배역의 비중과 계약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 보조연기자의 경우 하루 6만원 안팎을 받지만 텔레비전 광고 모델은 100~300만원까지 받는다.
S엔터테이먼트는 지난해까지 14명의 어르신들이 활동해 400여만원의 수익을 벌었다. 이 가운데 10%는 사업 운영비 명목으로 S엔터테이먼트에게 돌아간다.
현재 S엔터테이먼트에는 60여명의 어르신들이 소속해 있다. 이들은 오디션을 거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소속사에 가입된 어르신들이다. 지난해 1기로 선발된 30명은 20대 1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 S엔터테이먼트 일원이 됐다.
엔터테이먼트에 가입된 어르신들은 매달 서초노인종합복지관 강당에서 한차례 2시간씩 전문가를 초청해 표정연기, 자기표현 등 연기수업을 받는다.
그러나 소속사가 생겼다고 모델로 데뷔하는 것은 아니다. 수 십번의 오디션을 치르고도 모델에 낙방하는 일도 부지기수. 오디션을 거쳐 광고 촬영을 찍었다고 해도 화면에 나오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과거에 비해 실버모델의 수요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노인모델 시장은 열악한 상황이다. 때문에 광고 모델 준비만 하다 끝나는 게 아니냐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어르신도 적지 않다.
S엔터테이먼트 소속 회원인 김병국(61)씨는 4개 월 만에 공익광고 포스터 모델을 경험했다.
올 초 S엔터테이먼트 회원으로 활동한 그는 단시간에 모델로 선발된 케이스다.
그는 “수업을 받으면서 어르신들의 열정과 실력도 뛰어나지만 노인모델시장이 좁아 한 번도 모델 경험을 해보지 못한 분들도 많다”며 “나는 운이 좋은 경우”라고 말했다.
서초노인종합복지관 S엔터테이먼트 담당 김경수 사회복지사는 “모델을 원하는 어르신들은 많은 반면 어르신을 원하는 광고주는 한정되다보니 경쟁도 매우 치열하다”며 “어르신들이 오디션 10번을 가도 한번이 될까 말까 할 정도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인터뷰] S엔터테이먼트 소속 실버모델 김희자(66)씨
김희자(66·사진)씨는 S엔터테이먼트의 실버모델 가운데 소위 ‘잘나가는’ 모델 중 한명이다. 텔레비전 광고는 물론 잡지와 신문 등에서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다.
김씨가 S엔터테이먼트의 일원이 된 것은 지난해 10월. 광고모델과 관련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취업박람회에 참가했다 우연히 서초노인종합복지관이 실버모델을 모집한다는 내용을 발견한 뒤 망설임 없이 오디션에 도전했다.
김씨는 당시 20대 1의 경쟁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김씨가 오디션에 수월하게 합격을 한데는 텔레비전 광고모델 경력이 큰 도움이 됐다.
김씨가 모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2년 전. 전업주부였던 김씨는 남편이 퇴직을 하자 ‘이젠 내 인생을 살고 싶다’며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바로 실버취업박람회장.
우연히 실버모델을 모집한다는 업체를 보고 오디션에 도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오디션을 본 회사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떨어졌구나…’라고 자포자기할 무렵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광고회사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광고를 찍은 경험이 부족해 결국 고배를 마셔야 했다. 한 번의 낙방 뒤 본격적인 모델공부를 하고 싶어 찾아간 곳이 바로 서울노인복지센터 부설 노인취업훈련센터다.
김씨는 지난해 7월 이틀 동안 센터를 통해 모델 훈련을 받은 뒤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두 번째 촬영은 처음보다 수월했다. 긴 대사도 척척 소화해냈다. 자신감도 처음보다 훨씬 컸다.
얼마 후 “우리나이에 치매 걸리면 큰일이잖아”라고 대사를 하는 김씨의 얼굴을 텔레비전에서 보게 됐다. 예순 다섯 모델이 탄생된 것이다.
한 번의 낙방이 있던 뒤 찾아온 합격이라 기쁨이 더 컸다. 당시 광고출연료로 받은 금액은 300만원. 예순 다섯 할머니의 땀과 열정을 쏟아 얻은 값진 성과였다.
김씨는 “경험이 많지 않아 표정도 어색하고 대사도 자꾸 잊어버려 힘들었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며 “첫 촬영이 끝난 뒤 이 나이에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고 말했다. 김씨의 활약은 S엔터테이먼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소속사를 갖게 된 뒤 신문이나 잡지, 홍보책자 모델 등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김씨는 “모델 활동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어 행복하다”며 “멋진 실버모델로 거듭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정 기자 mjlee@n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