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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19] 헤럴드경제_ 노인일자리 노인모델 참여 어르신 인텨뷰
서초노인 2009-03-19

 

<제3의 인생>“인생 2막은 누구도 아닌 나의 것”

 

▶82세 키다리 감독님, 62세 모델 지망생

167cm의 큰 키 때문에 ‘키다리 감독님’으로 불리는 조 할머니가 처음 카메라를 잡게 된 것은 2002년. 무료 스포츠댄스 강습을 받으러 서울노인복지센터에 들렀다가 ‘영상아카데미’ 수강생 모집 공고를 본 순간을 그는 “노년의 운명이 커브를 꺾는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조 할머니는 당시 동영상은커녕 사진기도 제대로 잡아 본 적 없는 평범한 할머니였다. 그저 누구나 다큐를 찍을 수 있다는 말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멋진 영상을 떠올리며 어린아이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모델지망생 박기천(62) 씨가 숨겨온 포즈 실력을 발휘했다. 아직 무대에 정식으로 서 본 일은 없지만 중후한 CEO의 대표얼굴로 지면과 방송가를 누비는 것이 그의 꿈이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m.com
일주일에 2시간씩 2개월 교육을 받은 끝에 조 감독은 첫 작품으로 ‘산부인과’란 제목의 다큐를 만들었다.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탄생 순간을 담아 한국사회의 저 출산 문제를 짚어 본 7분짜리 작품이었다. 조 할머니는 직접 연출과 각본, 내레이션, 편집까지 담당했다. 보조 카메라맨은 90세가 넘는 동료 할아버지였다. 이후 한국사회에 대한 조 할머니만의 시각을 담아 ‘언제나 청춘(2004)’, ‘한옥예찬(2006)’을 만들었고, 지난 해 전문 다큐감독의 꿈을 안겨준 ‘꼬마 사장님과 키다리 조수’가 탄생했다. 현재 조 할머니는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나와 청계천’이란 작품을 구상 중이다. 그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노인의 시각으로 하고픈 말이 많다”고 전했다.

조 할머니의 나이를 생각할 때 전문모델을 꿈꾸는 62세 ‘모델 지망생’ 박기천 씨는 그야말로 청춘이다. 실제 지난 해 가을 ‘노인일자리박람회’에서 노인모델 면접을 치렀을 때 면접관으로부터 “주름이 너무 없어 곤란하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다. 그는 당시 1,2차 면접에 당당히 합격해 서초노인복지관에서 노인 전문모델 교육을 받고 모델의 꿈을 펼칠 날을 꿈꾸고 있다. 박씨가 마음속에 그리는 미래의 모습은 중후한 기업가 모델로 무대에 서는 것. 경력이 꽤 쌓인 동료들 중에는 월 200만원 이상 수입을 올리는 이들도 있다.

 

 

 

 

 

▶‘나’ 찾기 위한 여정 그만두는 그 순간이 곧 죽음

82세 다큐 감독 조 할머니는 흔히 ‘가방 끈 길고 돈 많은 노인’으로 오해받기 쉽다. 그러나 그는 젊은 시절 몸 돌보지 않고 시장에서 옷 장사를 해 자녀들을 키웠고 현재는 기초생활보호 수급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그가 카메라를 든 것은 여유 있어서가 아니라 ‘이제라도 자신을 찾아야겠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조 할머니는 “못 배운 한을 풀려고 무료라면 영어학원이고 댄스강습이고 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70세 되던 해 처음 운전면허를 딴 그는 ‘다 늦게 뭣 하러 고생이냐’는 강사에게 “앞으로 20~30년 쓸 건데 이 정도 노력도 안 하느냐”고 반문했다.

62세 모델지망생 박씨도 중후한 외모와는 달리 젊은 시절 온갖 허드렛일에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경제적 어려움은 여전하지만 그는 자신 있게 “도전하지 않는 삶은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젊은 시절 잠시 배웠던 회화 실력으로 지난 12월 제7회 대한민국 환경미술대전에서 당당히 특선에 이름을 올렸고, 몇 해 전엔 한국광물자원공사에서 무료로 ‘석재기능사’와 ‘석공예기능사’ 교육을 받고 자격증도 땄다. 뜻 맞는 동료들을 모아 농촌진흥청에 ‘약초재배’ 무료 강습을 신청할 예정이라는 그의 눈이 젊은이처럼 빛났다. 그는 “내 이름으로 된 방 한 칸 없지만 내후년쯤 미술대학원에 도전하고 70대엔 정치활동도 해 보고 싶다”면서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노년에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찾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아는 탐색을 미리 해 두는 것이 노년에 대한 가장 좋은 대비”라고 말했다.

노년에도 꿈이 있다. 그것도 무지갯빛 총천연색이다. 가족과 시대의 흐름 속에 휩쓸려 살아온 것이 과거였다면 현재는 온전히 자신을 위한 시간이다. 조 할머니는 “돈 없다고 주저앉으면 그저 죽기만 기다리는 인생”이라며 “세상에 전하고픈 보석 같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고 설레어 했다. 82세의 초보 감독은 100세에 이룰 ‘다큐 전문감독’ 꿈을 꾸고 있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m.com

 

기사원본보기: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03/17/200903170083.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