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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16] 경향신문 _ 노인일자리 OPAL선생님 활동 소개
서초노인 2009-03-19

 

나는 ‘오팔족’…노년의 삶이 무척 즐겁다

                                                   경향닷컴 장원수기자 jang7445@khan.co.kr
#1. 서울 서초구 새순교회 유치원에서 컴퓨터를 가르치시는 오팔(OPAL) 선생님 조계현씨(71). 매일 아침 9시 30분이면 유치원에서 컴퓨터 교실 문을 연다. 아이들에게 컴퓨터 사용의 올바른 자세, 기초적인 사용법, 인터넷 학습, 게임 등을 가르친다. 11시까지의 수업에 유치원 개구쟁이들의 청개구리 대답에 힘들만도 하려는데 조씨는 항상 활기에 차 있다. 내 손자, 손녀라는 생각이 없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그래서인지 조씨의 수업은 할아버지의 따스한 애정이 넘친다.

조계현씨가 16일 서초구 새순교회 컴퓨터교실에서 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장원수기자>


아이들은 호랑이선생님처럼 무섭게 혼내다가도 살살 달래는 선생님 모습에 풀이 죽었다가도 금방 저희들끼리 헤헤거리며 웃는다. 선생님 눈치를 살피면서도 질문에 큰 소리로 답하는 것이 영락없는 할아버지와 손주 모양새다. 아이들의 당돌한 질문과 웃음소리에 조씨도 연신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조씨는 1990년 육군대령으로 퇴역해 매달 국가에서 받는 군인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아들과 두 딸은 모두 결혼해 지금은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다. 편안한 노후를 마다하고 한달에 20만원정도 받는 오팔 선생님이 된 이유를 묻자 “아이들 공부도 가르치고, 교회에서 장로 일을 하다보면 (하루)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며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열심히 사는 것이 건강유지의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인 중에서 오팔선생님이든지, 실버환경지킴이이든지 간에 일하고 있는 노인은 실제로 채 10%가 안 된다”며 “사회가 노인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노인세대들이 먹고 살기 바쁘고 자식들 뒷바라지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노후준비를 하나도 안 했다”며 “이들에 대한 정부나 지자체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2. 서초구청과 노인종합복지관의 도움으로 방과후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시는 허문영씨(78). 그는 82년 군대에서 예비역 대령으로 퇴역한 후 신학교 총무처장 등을 역임한 뒤에 2000년부터 구청에서 인가받은 방과후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컴퓨터와 한문을 가르치고 있다.

허씨의 수업방식은 남다르다. 아이들은 허씨의 구호에 맞춰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하면서 한자의 재미에 푹 빠진다. 수업을 지루하지 않게끔 직접 프로그램을 구입해서 한자노래, 게임 등을 가르친다. 다른 방과후학교 한자수업이 종이로 설명하는 식인데 반해 그는 아이들에게 친숙한 컴퓨터 게임을 통해 한자를 숙달하게 하고 있다.
허문영씨가 16일 서초구 새순교회 방과후학교에서 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 ‘재밌는 한자 교육’ 시간을 진행하고 있다. <장원수기자>

허씨는 오팔족 선생님으로서의 보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노인들이 논다고 하는 것만큼 무료하고 괴로운 것은 없다. 약간의 스트레스를 갖고 뭔가 성취하려고 하는 생각이 있어야 오히려 더 건강하다”고 밝혔다. 그는 “노인이 일을 하지 않고 편하면 편할수록 게으르게 된다”며 “남의 도움을 받기만을 원하는 복지정책에만 기대지 말고 스스로 일을 개척해 찾는 것이 심신에 좋다”고 충고했다.

그는 현재 방과후학교 선생님 외에도 ‘해피메이커’ 일도 하고 있다. 편안하게 마지막 생을 정리하려는 사람을 옆에서 도와주는 일종의 ‘호스피스’로서 현재 네 명과 고민상담을 하고 있다. 그는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서 마지막 삶을 행복하게 보냈다고 말할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아직 나의 청춘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 핵가족과 고령화 시대를 맞이한 실버세대들 중에 안정된 경제력으로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노인들이 각광받고 있다. 보통 OPAL족(Old People with Active Life)이 불리는 이들은 남은 인생을 스스로 아름답게 가꿔 나가는데 적극적이다. 노인, 황혼, 은퇴자라는 말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경로당이나 공원 벤치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삶을 거부한다. 다양한 취미활동으로 젊은 시절보다 더 즐겁고 활기찬 삶을 살려고 한다. 또한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 모험과 도전을 기꺼이 하려고 하며 성공하면 스스로 축하하고 실패하더라도 기죽지 않고 좋은 경험을 한 셈 친다.

위 두 분의 예에서도 ‘오팔’ 선생님은 주로 자신의 삶의 긍정적으로 개척하는 것 외에도 경험과 노하우를 후손들에게 전수하는데도 적극적이다. 보통 교사나 전문직 종사자 출신으로 동화구연, 한자, 예절 외 다문화교육, 성악, NIE, 바둑, 수학 등 특기적성을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가르친다. 그러면서도 배우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조계현씨는 오는 4월 6일부터 노동부에서 지원하는 ‘한자지도자 교육’ 수업을 받는다. 체계적으로 한문을 배워 초등학생들을 가르쳐볼 생각이다.

오팔족은 스스로가 인생의 후반전을 새로운 마음으로 즐겁고 보람되게 보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노년에 삶의 성취도도 높고, 매사에 적극적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이 사회에 무엇인가 보탬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노년의 삶이 너무 즐겁다”고 말한다.

서초구 관계자는 “최근 노인들의 경제활동인구가 크게 증가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노인들은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오팔족’ 선생님처럼 노인들의 경륜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인일자리 사업을 꾸준히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팔족’이란?
일본의 방송 경제캐스터인 니시무라 아키라(西村昇)와 하타 마미코(友田麻美子)가 2002년 공동으로 저술한 책 <여자의 지갑을 열게 하라》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용어이다. 오팔은 영어 ‘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경제적인 풍요와 의학의 발달로 고령인구가 늘어나면서 등장한 새로운 개념의 노인층으로,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현재에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며 사는 노인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젊어서부터 쌓은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시간적 여유를 즐기면서 건강한 삶을 누리는 한편, 뚜렷한 개성과 활력을 바탕으로 봉사활동이나 각자에 맞는 취미활동을 하면서 보람 있는 노년을 보낸다.


<경향닷컴 장원수기자 jang7445@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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