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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3]실버 CF모델계 ‘차승원’ 곽용근 씨 “70대에 이효리 뮤비 출연… 안 늦었으니 도전하라”
이효선 2013-09-03
‘푸하하하’ ‘으허어엉’ ‘이노옴’ ‘야잇하잇’ ‘퉤퉤퉷’

거울 앞에 서서 웃었다, 울었다, 노여워했다…. 보통 요란한 게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다가도, 소피를 보고 손을 씻다가도 표정 연습을 한다는 CF 모델 곽용근(74)씨. ‘됐다 놔둬라’ 하면서 조끼 주머니를 벌리는 능청스러움, 스마트폰으로 야구중계를 보며 ‘넘어간다 넘어간다 숨 넘어간다’며 헐떡이는 표정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요즘 실버CF 모델계의 ‘차승원’으로 불리는 ‘꽃할배’ 곽씨를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 휴게실에서 만났다. 아, 역시 모델이다. 177㎝에 70㎏ 남짓, 군살 없이 늘씬한 그의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청바지에 하얀 셔츠 차림.

청바지가 잘 어울린다고 하자 곽씨는 “청바지, 일흔 넘어 처음 입기 시작했다”며 하하 웃는다. 일흔, 공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종심(從心)의 나이에 청바지를 입기 시작한 그는 인생 2막에서 1막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올해 벌써 CF 7편을 찍었고, 지금 2편을 촬영 중이다. 국내 CF뿐만 아니라 해외 유명 화장품의 중국 광고에도 출연했고, 이효리의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했다. 광고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그를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운 좋은 할아버지쯤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의 데뷔작은 2004년 촬영한 모 보험 회사 지면광고다. 경력 10년차로, 중고 신인인셈. 그가 모델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IMF 여파로 1998년 회사를 그만뒀어요. 컴퓨터를 배울 요량으로 예순 살에 서초노인복지관을 찾았죠. 그때 난데없이 모델 교육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오더라니까.”

‘컴맹’을 면하기 위해 들른 복지관에서 곽씨는 모델이라는 신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 한양대 화공과를 졸업한 뒤 엔지니어로 평생을 살아온 그다. 경험한 무대라고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예회가 전부였다. 호기심에 모델반을 두드린 그에게 강사는 모델 몸매라고 추켜세웠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그의 긍정적인 생활철학은 뒤늦게 찾아낸 ‘끼’에 거름이 되어 주었다. 강의실에서 배우는 워킹 등 기본기를 다지는 한편, 몸 균형 잡기에 도움이 된다는 스포츠 댄스를 배웠고, 다양한 표정이 필요하다는 귀띔에 연극 무대에도 섰다. 타고난 몸매로 노인복지관 모델반의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이었던 그는 끊임 없는 노력으로 모델 입문 15년 만에 톱 실버 모델이 됐다.

“지금도 꾸준히 연습하죠. 표정연습도 하고, 체력을 키우기 위해 걷기와 평행봉, 덤벨 운동을 합니다.”

요즘은 길에서 그를 알아보고 사진을 같이 찍자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고 자랑한다. 음식점에 들어가면 사인을 부탁하고, ‘밥값을 받지 않겠다’고 해 난처하다면서도 미소가 번진다. 무엇보다 TV에 나오는 할아버지를 보고 손자 다섯이 모두 좋아해 기쁘다며 얼굴 하나 가득 웃음꽃이 피어난다.

”인생, 한 치 앞을 모르는 겁니다. 한때 사업이 부도나 죽음까지 생각했던 제가 이렇게 실버모델로 뜰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는 월급의 75%까지 재형저축을 붓는 알뜰함으로 큰 돈을 모으자 샐러리맨들의 꿈인 ‘내 사업’의 유혹에 빠졌다. 1990년 철강제품 대리점을 차렸다. 3년 만에 부도가 나 쫄딱 망한 뒤 죽음까지 생각했다. 그런 그를 붙잡아 준 것은 신앙심이었다. 19세 때 옥수수죽을 얻어먹기 위해 발을 들여놓은 교회에서 참신앙인으로 거듭난 덕에 자살 충동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리고 친구의 도움으로 전셋집을 얻고 중소기업에 재취업, 재기했다.

“요즘 받는 CF 출연료는 별도의 통장에 꼬박꼬박 모아두고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쓸 겁니다. 내가 어려움을 겪어 봐서 알지요.”

20여 년 전 어렵던 때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보였던 곽씨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다시 눈빛이 반짝였다.

“이순신 장군이나 왜적의 못된 장수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드라마 모니터링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잘 나가는 CF 모델에 안주하지 않고 어느새 탤런트의 꿈을 키우고 있는 곽씨. 몸만 청바지를 입을 만큼 젊은 게 아니다.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그는 마음도 청춘이다. 그런 그가 은퇴를 앞둔 베이붐 세대에게 들려 준 말은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도전해보라”는 격려였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